문재인2 왜 추미애인가, ‘Again 2002' 지난 2002년 3월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경선이 시작되기 직전 당시 야당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은 46.5%였으며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1~2%에 불과했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는 평범한 군소 후보 중 1인에 불과했던 노무현은 막상 경선이 시작되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후단협’이라고 불리는 당내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힌다. 이로 인해 노무현은 정몽준 후보와의 길고 지루한 ‘단일화 과정’을 거쳐야만 했으며 투표 전날에는 정몽준의 단일화 약속마저 철회가 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바보 노무현은 굽히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지지자들의 뜨거운 결집을 끌어내 투표 당일 날 수많은 인파를 투표장으로 향하도록 만들었으며,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 2021. 8. 26. 추미애와 함께 맞는 비 2탄 - 시민 장혜선 추미애와 함께 맞는 비 2탄 - 2021.08.25 시민 장혜선님 페북 민주당은 늘 그랬습니다 김대중대통령님이 선거를 할 때에도 노무현대통령님이 선거를 할 때에도 문재인대통령님이 선거를 할 때에도 앞장서서 하지 않고 주저하고 미온적이고 뒷짐지고 대세가 결정되어서야 도와주는 척 지역주의가 극에 달할 때 보수의 본진에 가서 목숨 걸고 김대중을 연호했던 추미애와는 달리 노무현후보가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었음에도 당에서 후보에게 선거자금도 지원안해주고 후단협을 만들고 추미애가 전국을 돌며 돼지엄마로 불기기 전까지 당은 끝까지 노무현을 무시했습니다 2012년 대통령님이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에도 일부만 열심히 뛰었지 당은 돕는 시늉만했습니다. 2017년 추미애 후보가 당대표가 되어 용광로를 외치며 강하게 나갔기에 모.. 2021. 8. 2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