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가 옳다.>
올해 1월달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그는 검찰개혁의 사명을 띠고 운명처럼 법무부 장관이 되었고 상대방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났다. 그런 추미애가 또다시 운명처럼 대선 현장에서 상대방으로 만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고군분투중이다. 법무부 장관을 할 때나 지금 대선 경선중일 때나 그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법사위원장 문제에 대한 반대표명
네거티브에 대한 일관된 입장 등등
그런 추미애가 옳다.
이번 열린민주당과의 통합제안도
나로서는 찬성이고 환영이다.
고마워요, 추미애!
.
.
<추미애 장관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범계 범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가 끝났다. 이제 추미애의 시간은 가고 박범계의 시간이다.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고 그 앞 물은 다시 뒷물이 되는 게 세상이치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추미애는 물러가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작지 않다.
보수언론과 야당의 파상공세로 추미애가 입었을 상처도 크지만 그가 보여준 용기와 결기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법무부 장관의 표상이었다. 가히 헌정사상 이런 법무부 장관이 있었던가?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각기 낯선 충경을 정반대로 해석하고 평가할 것이다.
사실 기존의 법무부 장관은 전형적인 공무원의 모습이었다. 잡음 없이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장관직을 수행했거나 아니면 어둠속에서 보이지 않는 완력으로 절서를 유지했을 것이다. 검찰의 선배로서 후배 검찰을 때로는 당근과 채찍으로, 때로는 한통속주의로 관리하거나 관리를 당했을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가장 큰 업적은 법무부의 탈검찰선언과 실행이었다. 검찰과의 짬짜미 고리를 끊었다. 헌정사상 법무부와 검찰이 이토록 긴장관계였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견제와 균형의 균형추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확립했다. 정말 쉽지 않은 길이었고 큰 업적이다. 이 긴장관계가 생경해서 낯설었겠지만 항상 새로움은 낯설음을 수반하다.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시기에는 어쩌면 익숙한 비정상이 그리운 법이다.
어느 곳에든 균열은 심한 파열음을 내지만 그것이 건강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그것이 제도적으로 정착해서 새로운 질서가 되면 나중에 “발전적 계기”였음을 알게 된다. 검찰청이 법무부의 외청이었음에도 여태껏 흡사 검찰부 법무청같은 하극상 질서였다. 검찰에 법무부가 포위되어 마치 법무부가 검찰의 서비스 기관 같았다.
좋은 사례가 있다. 검사에 대한 인사제청권자는 법무부 장관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을 무시하고 검찰총장이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고 법무부 장관은 도장만 찍는 식이었다. 추미애 장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자 검찰총장은 인사 논의를 위해 장관을 상대로 법무부 장관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마치 회사의 인사부장이 인선안을 들고 사장실에 가지 않고 사장에게 사장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는 격이었다. 여기서 장소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장관의 인사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저항이었다. 법무부는 검찰의 서비스 기관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로부터의 법무부 독립선언을 한 셈이다. 상하의 개념이 아니라 포지션과 역할의 독립을 실행한 셈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장관의 인사권과 수사지휘권을 행사했고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권도 행사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법적 권한 행사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도 자체가 더 큰 의미가 있다. 역사는 첫발이 중요하다.
언론은 마치 추미애-윤석열 개인 간 감정싸움이라느니 추-윤 갈등으로 퉁 쳐서 갈등조장성 기사를 썼지만 이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낯선 광경임은 분명하다. 이는 개인 간 감정싸움도 권한다툼이 아니다. 법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던 검찰 권력의 균열이고 법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의 구태와의 결별이다. 이 과정에서 달콤하지만 부당한 독점적 검찰의 권한 남용에 대한 구부러진 정의 바로 세우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독점에서 분점으로 견제와 균형으로 다수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기본 원리다. 특정 소수가 의사결정을 하는 것에서 다수가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이 민주주의 발전 경로다. 정치민주화는 의사결정권을 유권자 대중에게 오롯이 돌려주는 것이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 정치의 주인도 국민이다. 법무부와 검찰의 주인도 국민이다. 국민의 주인이 검찰이 아니다. 국민이 있기에 검찰도 존재한다.
국민위에 군림하고 독점적 권력을 휘두르는 어떠한 사람도 조직도 민주주의의 적이다. 사실 검찰은 견제와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70년간 너무도 편리한 권력을 누려왔다. 기득권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가진 권력을 내려놓고 내놓는 것을 저항하는 것이 기득권 세력의 본능적 자기방어다. 그러나 독점적 기득권은 역사와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항상 승리하지 못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고 끈질긴 저항으로 저항하지만 결국 역사의 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저항의 대치 전선 맨 앞에서 추미애가 있었다. 이 시기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숙명이었는지 모른다. 추미애가 아니라 홍길동 법무부 장관이었어도 똑같은 시련과 저항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추미애를 검찰개혁의 주연 배우로 임명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어쩌면 시대의 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검찰개혁은 시대적 운명이었으니까.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의 완전한 분리 같은 법과 제도의 확립이 검찰의 근본적 개혁이다. 조국 전 장관이 흘린 피와 추미애 장관의 고초가 검찰개혁이 왜 필요한가를 국민들에게 또렷하게 알렸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 실감난다. 철옹성 같았던 검찰개혁의 성문이 열렸다. 많은 전사자가 발생한 덕분이다.
팽팽한 축구공의 바람은 망치로 내리친다고 빠지지 않는다. 축구공의 바람은 예리한 송곳으로 찔러야 뺄 수 있다. 추미애 장관이 수십 년간 법무부에 온존했던 검찰포위망을 뚫어낸 것은 예리한 송곳 같은 역할을 했다. 그 송곳에 본인도 찔려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국민들은 안다. 특히 검찰개혁을 열망했던 국민들은 더욱 또렷하게 추미애의 아픔을 기억하고 어루만질 것이다.
국민들에게 미안함을 남긴 정치인은 언젠가 보상받게 된다고 한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그 분들에게 미안해했던 국민들이 지지자들이 그 분들을 만들어 냈다. 추미애 장관의 앞길이 어디까지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추미애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국민과 지지자들이 많이 생겨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추미애의 자산이다.
추미애 장관님, 그동안 참 고생 많았습니다.
하필이면 이 시기의 법무부 장관이 정치인 추미애에게 운명이고 숙명이었음을, 그리고 그 시대적 소명을 기죽지 않고 결기 있게 해낸 용기 있는 정치인이었음을, 아는 사람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입니다. 세상에는 미움 받을 용기도 필요합니다.
용기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도 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두려움 자체라고 했습니다. 두려움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았던 추미애의 결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치인 추미애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출처: 페북 정청래의 알콩달콩
https://www.facebook.com/cheongrae1/posts/370567351107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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