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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가 옳았다/왜 추미애인가?

추미애에게 후퇴는 없다. 그가 곧 “진격의 실체”이기 때문이다.-김민웅교수

by 투어이브 2021. 10. 2.

추미애에게 후퇴는 없다. 그가 곧 “진격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 김민웅교수페북 2021.10.01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추미애”는 누구인가?

- “전면전(全面戰)의 장수”를 제대로 뽑아야 한다.

- 추미애를 반드시 결선의 자리에 세워야 한다.

 

1.

어지러운 정국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장동 사태’가 터져 나오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이 있다. 진실은 누가 봐도 너무도 분명한데 그걸 규명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은폐와 왜곡, 뒤집어씌우기가 수없이 되풀이 되어온 것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엉뚱한 이가 범인이 되고 진범은 도리어 피해자처럼 만들어진 사례가 어디 하나 둘인가? 윤석열이 그 대상으로 포함된 수사의 주요주체인 공수처의 진심과 능력에 대해 우리는 아직 모른다. 권력기관 관련자 수사는 기본적으로 불가피하게 정치에 속한다. 그러니 공수처의 판단은 정치와 분리된 수사논리에 얼마나 충실하게 될까? 공수처는 지금 정치의 목줄을 쥐고 있다.

부패 특권 카르텔의 동맹체제는 여전히 굳건하다. 언론은 이 모든 정세를 인식하는 1단계 통로다. 그러나 개혁대상이다. 그래서 전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반개혁 언론이 기획하고 있는 정치공작은 대선국면에서 그 목표가 명확하다. 그건 개혁정치 등장을 막는 일이다.

정치검찰, 적폐언론, 부패정치, 비리판사, 금융-토건 자본으로 뭉친 이들은 이 개혁저지 작업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2.

따라서 이번 선거는 일대 “전면전”이다. 우리 사회의 개혁을 해낼 수 있는가, 아니면 대강 어정쩡한 타협으로 그치거나 최악으로는 퇴각당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역사적 중대사이다.

개혁을 거부하는 자들의 정체는 드러났다. 한 마디로 날강도, 도적 떼들이다. 공적 자산과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하는 일에 이골이 난 자들이다. 이들 강도와 도둑의 무리가 다시 중앙권력을 쥐게 되면 국민들의 재산은 이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우리는 매일 이들에게 털려서 온갖 시민적 권리를 빼앗기며 살아가야 한다.

더군다나 이들은 심성(心性)조차 탐욕스럽고 흉포한 자들이라 그 행패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우리는 분노하나 좌절하고 점차 무력해지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다. 그 패배의 고통은 경험으로 볼 때 오래 갈 것임이 분명하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될 미래다.

3.

윤석열의 검찰 쿠데타, 그 본질은 부패한 특권 카르텔의 성채를 굳건히 하는 것에 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내리 해먹어 왔던 짓을 더욱 확고하게 쥐고 해먹으려는 세력이 벌이는 음모적 기획이다. 대장동 사태는 그 기획의 이유를 보여주는 하나의 보기다.

그러니 “검찰개혁”은 정치검찰의 권력 논리로서도 그렇고 이들의 특권 카르텔 이익구조로 봐도 필사적으로 막아야 하는 일이었다. 반개혁 언론은 이들 세력의 공개 파트너다.

이들의 공격 목표는 따라서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최전선의 수장일 수 밖에 없었고 조국과 추미애는 바로 그 집중 타격 대상이었다. 민주당 내 반개혁 세력은 이들 적폐와 손을 잡고 개혁저지에 한몫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 자들의 정체도 벗겨지고 있다.

4.

집권당인 민주당이 개혁의 깃발을 내려놓고 근본은 짚지 않은 채 말로만 민생이요, 협치요 운운하면서 개혁전선을 허물어갈 때 “개혁”의 화두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굳게 붙잡고 나선 이는 누군가? 대선후보 가운데 추미애가 유일하다.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특권 카르텔 일소를 논하면서 마치 처음부터 말해왔던 것처럼 말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과 다른 담대한 돌파력을 온몸으로 입증해낸 정치인도 추미애뿐이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그 때문에 정치적 고립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도리어 강점이 되었다.

촛불시민들이 추미애의 깃발을 함께 들고 기운차게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선례가 없는 시민 민주주의의 순수한 자발성과 역동성이 추미애 캠프에 넘쳐나고 있다. 그러기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끼어들 틈이 없고 공약은 오염되지 않는다. “정치적 순수함”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세상은 이렇게 알아가고 있다.

매일 강행군을 하는 추미애는 그런 기운을 받아 더욱 예리하고 더욱 아름다워지고 있으며 더욱 거칠 바 없는 활력을 뿜어내고 있다.

5.

표로 드러난 지지율은 아직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추미애를 “이제야 비로소” 그리고 “뒤늦게 발견”하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그저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담은 애정을 표하며 추미애를 뜨겁게 둘러싸고 있다.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의지가 활화산처럼 넘친다.

토론회에서 보여주는 추미애의 열정과 단호함은 그가 부당한 현실을 결코 참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거기서 “전투력”이 솟아 나온다. 우리 모두를 위한 능력이다.

추미애의 전투력은 오랜 경험과 성찰, 이론, 시야의 광활함과 깊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적 성숙함이 받쳐주는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추미애의 깃발> 대담집을 내면서 그와 경계선 없는 대화를 나눈 나의 실제 체험이다.

6.

추미애가 대선에 나서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추미애의 깃발>이 거의 마무리 되어갈 즈음이었다. 대담의 과정에서 마음이 정리된 것이다. 개혁정치가 붕괴되어가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촛불시민들의 안타까움과 갈증을 절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또 하나의 가시밭길이며 흙먼지가 뒤덮힌 황토길을 가야 하는 험난한 시간을 예고했다. 그러나 추미애는 고독한 수행으로 단련된 기도로 역사의 요구에 응답했다. 우리 앞에 지금 서 있는 추미애가 바로 그 모습이다.

하여 그는 힘겨운데도 맑고 단호하면서 정겨우며 흙탕물 속에서 도리어 날로 아름답다.

7.

추미애를 결선의 자리에 반드시 세워야 한다. 그 어떤 것에서도 자유로운 그가 한국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보고 싶다. 그 존재 자체가 이미 개혁정치이기 때문이다. 개혁정치의 폭발력을 모두가 실감하게 될 것이다.

누구도 추미애를 걸고 넘어질 수 없으며 더는 공격할 거리가 없는 것에 낙담하게 될 것이다. 온갖 수를 쓰겠지만 모두 무력해지고 말 것이다. 추미애는 진실이 이기는 것을 확고히 믿기 때문이다.

내게 추미애는 “아름다운 정의(正義)”다. 우리에게 추미애는 “역사의 깃발”이다. 힘없고 억울한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체온을 가진 그가 장수로 나선 전면전은 꼭 승리할 것이다. 모두 환호와 감격을 누를 길이 없게 될 것을 믿는다.

추미애에게 후퇴는 없다. 그가 곧 “진격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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