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미애가 옳았다/왜 추미애인가?

본선 경쟁력에 대하여 - 김민웅

by anone 2021. 9. 17.

“본선경쟁력”에 대하여

- ‘친문 적자 논쟁’ 구리고 ‘가치 부재의 실용주의’도 경계해야

- 이번 대선의 본질은 개혁정치를 파탄내려는 세력척결로 새로운 시대 여는 것

- 특권 카르텔과의 정면 투쟁/돌파력, 이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

 

1.

민주당 어느 후보 진영에서 다른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문제삼아 자기 후보가 안정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더하여 자기 후보가 ‘문재인 정부 계승의 적임자’라는 것입니다. 본선경쟁력은 도덕성이라며 상대의 공격에 취약한 후보는 곤란하다는 취지입니다.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지 듣는 사람들은 다 알게 되는 화법이었습니다. 지지율 1위 후보를 조준한 것입니다.

 

2.

도덕성은 어디서나 기본입니다. 그러나 이걸 스스로 앞세우는 것은 교만의 위험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문재인 정부 계승의 적임자 논쟁”은 대단히 구린 방식의 정치선전입니다. 이 논리의 밑바닥에는 이른바 “친문적자 논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어나 인식이 대단히 봉건적입니다.

 

게다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정치공방에서 우리는 공격이라는 것이 도덕적 근거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구잡이 조작과 왜곡, 음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덕성 운운의 논리 역시 먹힐 만 하지 않습니다.

 

3.

민주정부 4기라는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 계승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선거를 하는 까닭은 그걸 넘어 문재인 시대의 한계를 돌파하라는 요구를 담아내는 데 있습니다. 돌파의 지점을 제시해야 새로운 정부 수립의 의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차기 대통령과 정부는 지난 5년간 분명해진 시대적 한계를 돌파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한계란 춧불혁명으로 등장한 정부가 여전히 특권 카르텔에 포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힘든 과제입니다. 이걸 해결할 수 있어야 새로운 시대가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3.

검찰의 난동과 언론의 왜곡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걸 조장하고 있는 세력은 정권교체라는 이름을 걸고 개혁정치를 파탄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와 정면으로 맞붙어 싸워서 개혁정치의 온전한 틀을 만드는 것, 이게 이번 대선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도덕성은 “정의에 대한 태도”입니다. 가치의 문제입니다. 개혁정치의 전면적 수립을 목표로 삼지 않는 후보는 본선에서도 개혁성을 정면으로 내걸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체불명의 확장문제를 고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지지율 1위 후보는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 실용주의를 내걸고 있습니다. 일견 옳은 듯 합니다. 등소평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그 논리가 오늘날 중국의 부를 가져온 동시에 심각한 불평등을 구조화시키고 있습니다.

 

특권의 해체가 전제되지 않는 실용주의는 독입니다. 특권의 해체에 이바지할 때 그 실용주의의 가치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니면 특권의 도구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실용주의를 수단화할 수 있는 역량은 거의 언제나 대자본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브라질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하바드 법학교수 로베르토 웅거가 말했던 실용주의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특권 카르텔의 해체가 곧 진정한 실용주의의 본 바탕입니다. 이런 철학이 없을 경우 대자본의 논리에 포섭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안타깝지만 문재인 정부가 보인 약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의도했다기보다는 처한 상황이 그랬습니다. 워낙이 상대가 악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방어가 보다 우선적이어서 진보 지식인들이 말을 아꼈던 것은 다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됩니다.

 

6.

본선경쟁력, 누가 가장 적합할까요?

 

첫째, 특권 카르텔과의 정면 투쟁과 돌파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인식과 기세가 없는 후보는 본선에서 조작된 여론의 압박과 특권의 포위 속에서 점차 자신의 입장을 후퇴시킬 것입니다.

 

둘째, 친문, 친노 운운의 봉건적 정파주의는 개혁정치의 본질을 훼손시킬 것입니다. 이걸 뛰어넘어야 새로운 시대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 창조가 보다 관건인 절박한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대통령은 이장이나 군수, 시장이나 도지사가 아닙니다. 장관이나 총리도 아닙니다. 이들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전국 차원의 안목과 세계적 사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대 철학의 깊이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자잘한 행정조처를 공약화하는 것은 대통령의 위상이 아닙니다.

 

굵고 분명한 방향, 그리고 이를 섬세하게 살펴보는 능력이 있으면 됩니다. 그래야 시민들의 자율적 창조력이 마음껏 발산되는 정치를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가운데 이걸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딱 떠오르지 않습니까?

 

단 한 사람, 추미애.

 

그를 앞세운 새로운 정부는 우리에게 한 시대를 넘어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연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출처: 김민웅 페북 2021.9.16.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0219951713960225&id=1143592136

댓글